행군산
| 주소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남평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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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이복남(李福男, 1555년 음력 8월 28일~1597년 9월 26일(음력 8월 16일))은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 군인이며, 본관은 우계(羽溪)로 자(字)는 수보(綏甫),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무과 급제후 선전관에 초임된 뒤 절충장군 전라도병마절도사(折衝將軍 全羅道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1588년(선조 21년) 무과 식년시(武科 式年試)에 병과로 급제, 선전관, 별장을 거쳐 1592년(선조 25) 나주 판관(羅州判官)이 되고, 그해 4월 나주판관 재직 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지자, 겸 도복병장에 임명되어 전주 웅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승전의 공으로 그해 12월 당상관에 승진했다. 팔량신성을 수비하다가 1593년(선조 26) 전라조방장, 전라방어사(全羅防禦使)를 거쳐 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이 되었다. 그해 7월 병으로 체직되었으나 바로 복직, 전라방어사에 임명되고, 1593년 10월 훈련 도정(訓鍊都正), 12월 다시 충청조방장에 재임명되었다. 1594년 8월 남원 부사(南原府使), 이듬해 1월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듬해 3월 나주 목사(羅州牧使) 등을 역임했다. 1597년(선조 30년) 1월 다시 전라도병마절도사에 임명, 그해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 8월 해안가로 올라오는 일본군을 막으러 순천으로 내려갔다가, 남원성이 포위되자 말머리를 돌려, 그해 8월 9일 7백의 군사를 이끌고 남원성에 들어갔다. 남원성 전투에…
출처: 위키백과 (CC BY-SA)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B3%B5%EB%82%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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