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
| 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양지2길 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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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양사언(楊士彦, 1517년 ~ 1584년) 조선의 문신·서예가이다.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용(海容).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안평대군, 김구, 한호와 함께 조선 전기 4대 명필 중 하나로 초서체 제일이었다 한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 대동승(大同升)을 거쳐 삼등(三登) 현감·평양 군수·강릉 부사·함흥 부윤 등을 역임한 후 회양(淮陽) 군수, 이어서 철원 군수를 지냈다. 회양 군수로 있을 때 금강산에 자주 들어가 대자연을 즐겼고 금강산 만폭동(萬瀑洞)의 바위에는 지금도 그가 새긴 '봉래풍악 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이어서 안변(安邊) 군수로 나가 일을 잘하여 그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관계(關係)를 받았다.
그 후 안변 군수로 있으면서 큰 못을 파고 마초(馬草)를 저장하였다. 이듬해에 북쪽에서 변란이 일어나서 많은 군대가 북송될 때 다른 고을에서는 마초와 물이 없어서 관리나 백성들이 책임을 추궁당하여 사형을 받는 자까지 있었으나 안변만은 아무 걱정 없었다. 그의 앞을 내다보는 지혜에 누구나 탄복하였다.
얼마 안 되어 지릉(智陵)에 화재가 일어나니 그 책임 때문에 해서(海西)에 귀양 갔다. 2년 후 풀려 돌아오는 길에 병사했다.
양사언은 비상한 천재인 데다가 노력을 거듭하여 읽지 않은 책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40년, 다…
출처: 위키백과 (CC BY-SA) — 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C%82%AC%EC%96%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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